2020년 임대차 3법과 패닉바잉: '영끌'의 시대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내 월급과 통장 잔고는 그대로인데, 주변 사람들의 자산만 두 배로 훌쩍 뛰어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드실 것 같나요? 아마도 강렬한 박탈감과 함께 '나만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지독한 불안감에 휩싸일 것입니다. 불과 몇 년 전인 2020년, 대한민국 2030 세대의 마음을 덮쳤던 이른바 '벼락거지'의 공포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지난 66편에서 우리는 2017년 8.2 부동산 대책이 어떻게 '똘똘한 한 채' 현상을 낳고, 다주택자 규제가 오히려 매물 잠김이라는 역설을 불러왔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규제가 누적되며 시장의 공급 파이프라인이 꽉 막혀가던 중, 2020년 여름 부동산 시장의 뇌관을 건드리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임대차 3법'의 통과와 그로 인해 촉발된 '패닉바잉(Panic Buying)' 사태입니다. 오늘은 선의로 포장된 정책이 어떻게 시장의 룰을 파괴하고 2030 세대를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의 늪으로 밀어 넣었는지, 그 치열했던 2020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2020년 7월 31일, 전세 시장의 룰이 바뀌다
2020년 7월 31일, 국회 문턱을 넘은 지 불과 이틀 만에 국무회의를 통과하며 일사천리로 시행된 법안이 있습니다.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강력한 명분 아래 탄생한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입니다. 이 중 시장에 즉각적인 핵폭탄을 투하한 것은 앞의 두 가지였습니다.
- 계약갱신청구권: 세입자가 원할 경우 2년의 전세 계약을 한 번 더 연장해 총 4년을 거주할 수 있게 한 권리입니다.
- 전월세상한제: 계약을 갱신할 때 임대료 상승 폭을 기존 금액의 5%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입니다.
겉보기에는 무주택 서민과 세입자를 위한 완벽한 방패 같았습니다. 2년마다 이사 걱정을 해야 했던 세입자들에게 4년의 안정적인 거주를 보장하고, 폭등하는 전세금을 5%로 묶어둔다니 이보다 좋은 정책이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시장은 정책 입안자들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거대한 유기체였습니다.
선의의 정책이 낳은 나비효과: 전세 대란과 이중가격
법이 시행되자마자 시장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부작용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집주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까요? 한 번 세입자를 들이면 4년 동안 집을 비울 수 없고, 전세금도 5%밖에 올리지 못합니다. 게다가 보유세 등 세금은 매년 급등하고 있었습니다. 집주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생존 전략은 무엇이었을까요?
"어차피 4년 동안 전세금을 못 올릴 테니, 처음 계약할 때 4년 치 인상분을 미리 다 받아내야겠다!"
이러한 심리가 시장을 지배하면서 신규 전세 매물의 호가가 수억 원씩 폭등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기존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눌러앉으면서 시장에 나오는 전세 매물 자체가 씨가 말라버렸습니다. 이른바 '전세 난민'의 탄생이었습니다.
가장 기형적인 현상은 같은 아파트, 같은 평형에서 전세금이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이중가격(심지어 삼중가격)' 현상이었습니다. 갱신권을 사용한 세입자는 5억 원에 살고 있는데, 새로 이사를 와야 하는 신규 세입자는 10억 원을 줘야만 전세를 구할 수 있는 황당한 상황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 세입자를 보호하려던 정책이 오히려 새로 집을 구해야 하는 신혼부부나 청년층의 주거 진입 장벽을 철옹성처럼 높여버린 것입니다.
'벼락거지'의 공포가 부른 2030 패닉바잉과 영끌
전세가가 폭등하면 자연스럽게 매매가도 밀어 올려집니다. 전세로 살 집조차 구할 수 없게 된 사람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1억, 2억씩 뛰어오르는 아파트값을 지켜보던 무주택자들의 마음에 거대한 공포가 피어올랐습니다.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평생 전월세 난민으로 떠돌며 벼락거지가 될 것이다." 이 강박에 가까운 공포심은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켰습니다.
이때 등장한 단어가 바로 '패닉바잉(공황구매)'과 '영끌'입니다. 특히 2030 세대의 움직임이 필사적이었습니다. 이들은 마이너스 통장, 신용대출, 심지어 부모님의 노후 자금까지 모든 레버리지를 총동원하여 아파트 매수에 뛰어들었습니다. 2020년 하반기부터 2021년까지 서울 아파트 매수자의 절반 가까이가 2030 세대였을 정도로 그 열기는 뜨거웠고 또 처절했습니다.
당시의 패닉바잉은 철저히 'FOMO(Fear Of Missing Out,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증후군에 기인했습니다. 자산 시장의 폭등 열차에 나만 타지 못했다는 불안감은 수억 원의 빚을 짊어지는 두려움마저 덮어버렸습니다. 정부는 "고점이다, 빚내서 집 사지 마라"라고 경고했지만, 이미 신뢰를 잃은 정책 시그널은 시장에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습니다.
[체크리스트] 패닉바잉 시대를 관통하는 부동산 투자 생존 법칙
우리는 2020년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자산 시장에서 군중 심리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당장 무언가를 사야 한다는 조급함이 든다면, 아래의 체크리스트를 반드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 감당 가능한 레버리지인가?
영끌의 가장 큰 위험은 '금리 인상'이라는 변수를 배제했다는 점입니다. 대출 이자가 현재의 2배가 되어도 나의 현금흐름(월급 등)으로 붕괴 없이 버틸 수 있는지 계산해야 합니다. - 정책의 '의도'가 아닌 '결과'를 예측했는가?
임대차 3법처럼 선의로 포장된 정책일수록 시장의 부작용(매물 잠김, 가격 폭등)을 동반할 확률이 높습니다. 정책이 발표되면 1차원적인 혜택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집주인 등)가 어떻게 우회하고 반응할지 2차 파급효과를 고민해야 합니다. - 조급함(FOMO)에 의한 결정은 아닌가?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은 상승장 끝자락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유행어입니다. 남들이 사니까 나도 산다는 마인드가 아니라, 명확한 가치 평가 기준(전세가율,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 등)을 가지고 진입 시점을 정해야 합니다.
임대차 3법이 현대 부동산 시장에 남긴 뼈아픈 교훈
2020년의 임대차 3법과 패닉바잉 사태는 '시장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려 할 때 얼마나 끔찍한 부작용이 발생하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완벽하고도 뼈아픈 역사적 교과서입니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기본 원리를 무시한 채 규제와 통제만으로 가격을 잡을 수 있다는 오만함은 결국 가장 보호받아야 할 서민과 청년층을 빚더미 위로 몰아넣었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초저금리와 끝없이 오를 것 같았던 집값. 영끌족들은 2021년 최고점에서 축배를 들며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반전을 준비합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깨어나고 있었고, 세계 경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가파른 금리 인상의 터널로 진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68편에서는 영원할 것 같았던 상승장을 단숨에 얼어붙게 만든 '2022년 글로벌 금리 인상과 영끌족의 비극'에 대해 다루어 보겠습니다. 빚으로 쌓아 올린 모래성이 거시경제의 파도 앞에서 어떻게 무너져 내렸는지, 역사의 다음 페이지를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